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도서) (문단 편집) == 남은 의문점 == * '''역사적 접근에 대한 조명''' '약자들의 기억', '고통의 역사', '항쟁의 계보' 같은 것들은 이미 [[페미니즘]]을 포함하여 각종 사회운동 분야들에서 익숙하게 공유되고 있는 문제의식이며, 상기했듯이 이미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 중에도 이런 목적으로 쓰여진 책들이 여럿 있다. 그렇다면, 다른 유사한 여성사(史) 도서들과 비교할 때 '''본서만이 갖는 독창성'''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단순히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할 게 아니라, 유사한 의미와 맥락의 사건들끼리 서로 묶어서 분류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예컨대, 페미니즘이 [[진보마초]]들과 대립했던 사례들끼리만 묶어서 한 챕터를 구성하거나, 2005~2015년 사이의 페미니즘의 침묵기에 관련된 사례들끼리만 묶어서 한 챕터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단순한 '사실의 나열' 보다는 어떤 큰 흐름을 읽어내고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서는 "여성이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박탈당했다" 고 말하면서 '''사건들의 단순 나열에만 치중'''하는 데 그쳤다. 사건사고의 아카이빙 정도라면 심지어 [[페미위키]]에서도 대신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이다. * '''상수로서의 가부장제?''' 본서는 [[1990년대]]부터 [[2018년]] 5월까지의 거의 20년에 달하는 세월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이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가부장제]]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간 크게는 [[여성가족부]]가 출범하고, 작게는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많은 사회 운동을 펼쳐 왔다. 여기에 가부장제는 어떻게 반응하고, 타협하고, 강화하거나, 양보했는가? 문제는, 본서에서는 가부장제를 마치 '단지 상수' 인 것처럼 취급했다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우리 사회의 젠더 현황이 90년대 이래로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행간의 메시지가 자주 등장한다. 물론 여성억압 문제의 심각성과 만연함을 강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겠으나, 이것은 학술적으로도 '''비'''(非)'''역사적인 접근'''이 되며,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도 '''비관적인 접근'''이 된다. [[포기하면 편해|지금껏 아무리 난리쳐 봤자 하나 쓸모도 없었다는 식의 암시]]를 주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반응을 다차원화하여 어떻게 변화해 가고 어떻게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지 분석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예컨대, 본서에서 짤막하게 다루었던 "메갈리아 남성 이용자" 사례들에 대해서 이들이 어떤 요인에 의해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더 자세히 소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초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인지 이런 가능성이 구체화되진 않았다. * '''문제의 포커스 : 왜 하필 남성인가?''' 본서에서는 TMT와 같은 [[이론적 조망]]까지 간접적으로 동원해 가면서 남성들의 동향을 문제시한다. 하지만 무엇을 문제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예측이나 패턴으로부터 유의미하게 달라지는 독특성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럴 때 그 독특성에 대해서 "그렇다면 그것은 왜 그러한가?" 라는 식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 논리를 잘 따랐던 사례가 바로 [[시사IN]]에서 보도했던 "20대 남자 현상" 이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유독 20대 남성 인구집단에서만 고연령층 이하로 극도로 낮게 나타나는 '유의미한 독특성' 이 발견되었기에, 이를 근거로 20대 남성을 특수하게 보고 연구 객체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서에서 남성들에게 설명이 요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행히도 본서는 이 설명을 생략했거나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결과, 단순히 저자와 생각이 다른 남성들을 이해할 수 없기에 손쉽게 그들을 연구 객체화하고 병리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저놈들 정말 연구대상이야" 같은 생각은 학문적으로도 건전한 질문이라고 보기 어렵고,[* 당장 [[인종차별]]과 같은 다른 주제에 있어서도, "인종차별이나 하는 꼴통들, 저놈들 대체 뭐가 모자라서 저러고 사나" 같은 연구동기보다는, "무엇이 인종주의자와 평등주의자를 나눌까? 양측은 서로를 어떻게 인식할까? 갈등의 양상은 얼마나 동적일까? 위험요인과 완화요인은 무엇일까? 문화는 양측에 얼마나 우호적일까?" 같은 질문들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유도하는 좋은 인식론적 수단이 바로 [[이론]]적 배경이다.] 대중적으로도 생각이 다른 타인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졸지에 '연구대상' 으로서 비정상 취급을 받은 남성들이 과연 편한 마음으로 본서를 읽을 수 있을까? * '''남성에게 변화의 가능성은 있는가?''' 위에서 남성에 대한 인식론적 배경을 문제시한다면, 이번에는 남성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본서에서 인용한 논자인 [[정희진]] 씨의 경우, 자신의 칼럼에서 한국의 남성성을 기껏 고생스럽게 세분화해 놓고도, 곧장 소위 '남성연대' 를 거론하면서 그 다양한 남성성들을 도로 전부 합쳐놓고 본질화, 병리화했다. 남성성의 다양성을 탐구하려는 것은 현재의 지배적 젠더 체계를 전복할 수 있는 자생적인 힘이 남성성의 내부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성성의 다양성을 들어서 '남성연대' 라는 남성 전반에 대한 비난을 할 것이 아니라, "이처럼 남성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남성들은 변화의 여지가 있다" 는 판단이 나오는 게 더 자연스럽다. 남성들은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악마화된 존재가 아니라, 분명 어딘가에서는 소위 '주변부로부터의 전복적 기획과 실천' 의 징조가 나타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본서는 정희진 씨의 분석이 옳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남성들이 아무리 다양하건 간에, '남성연대' 라는 이름 하나만 있으면 남성들은 개전의 정(?)이 없는 [[답이 없다|답도 없는]] 존재들이 되고 만다. 이것은 인식론적인 막다른 길이다. 남녀 간의 소통이 벽에 대고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면,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작게는 젠더 분리, 크게는 남성 배척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역시 책의 초점에서 벗어나기 때문인지 관련언급이 부족한 상태이다. * '''팩트에 대한 회의감''' 물론 본서에서 제시한 팩트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은 온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본서는 마치 [[팩트]]라는 '무기고' 를 [[안티페미니즘]] 세력에게 양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165페이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들의 삶의 경험을 고스란히 팩트로 옮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팩트가 필요할 때에는 팩트로 이야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팩트에 의해 설득된다면, 그들에게 팩트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는 마땅히 팩트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해 정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성범죄 관련 통계 데이터들과 연감, 백서 자료들, 구조적 차별의 예시들을 통째로 외워두었다가 활용하는 것의 가치는 꽤나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넌 살아男았잖아!" 라고 슬로건을 외치는데 멈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거나 논파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게 여러모로 용이하다] 한 예로, 많은 페미니스트들 및 친 페미니즘 진영 사람들은 [[나무위키]]를 비판하며 종종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이퀄리즘]] 문서가 게시되었던 사례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날조 시도와 이에 대한 동조 움직임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나무위키가 바로 그 팩트를 통해서 불과 100여 개의 토론 코멘트 즈음에 이미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기존의 서술이 전부 날조였음]]을 깨달았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후 토론 탭의 코멘트가 거진 25,000개가 넘어가도록 수없이 들어온 반론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팩트' 때문이었다. * '''사회적 지표로서의 인터넷 덧글?''' 본서 271-272페이지에서도 언급되듯이, [[미투 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88.6%가 찬성론일 정도로 높았고, 피해자를 격려해주고 싶다는 반응도 73.1%에 달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본서 278페이지에서 언급된 [[펜스 룰]]에 대한 여성비하적 덧글을 보면 앞의 [[사회조사]] 결과와는 도저히 합치되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본서는 불행히도 '''설문조사 결과는 [[다테마에|체면을 위한 겉치레]]이고, 인터넷 덧글은 [[혼네|솔직하지만 더러운 속마음]]인 것처럼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인터넷 덧글을 분석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연구방법론]]에 대해서, 저자는 커뮤니케이션학 전공자로서 사전에 정당화를 시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써제끼고', 사람들이 열심히 추천 버튼을 눌러주었다면, [[사회조사]] 급으로 유의미한 사회적 지표가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한 "여성에 대한 가혹한 억압" 의 근거가 인터넷 덧글이라면, '''어떻게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물론, 분명 [[커뮤니케이션학|이 분야]]에는 인터넷 덧글에 대한 방법론적 정당화의 논의가 존재할 것이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덧글이란 덧글일 뿐인 게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이상, 비전공자 독자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